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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중국에 살았던 외계인 민족?(싼싱두이)에 관해서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1. 천 년의 싼싱두이 


중국 쓰촨성의 싼싱두이 유적지에서 수 천개의 국보급 유물이 발굴되어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그 유물들은 같은 시대의 알려진 중국 예술과는 완전히 다른 독자적인 예술 양식을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수많은 의문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죠. 

이곳에서 출토된 청동기 기물 중 높은 콧대와 움픅 들어간 눈, 큰 귀와 입을 가진 청동 두상은 어디서 났을까요? 

중국인의 모습과는 많이 다른 특이한 외모의 청동상은 어떤 종족일까요?

최고의 번성기를 맞은 싼싱두이 문화는 어쨰서 사막에 내린 비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걸까요?


이런 많은 의문들 사이에서도 전문가들을 더욱 놀라게 한것이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중국에서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상나라 시대의 5대 제사 유적 중의 하나인 싼싱두이 제사 갱에 관한 그 어떤 역사적 기록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싼싱두이 유적지에서 출토된 유물 중에는 금지팡이에 약간의 부호가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문자를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고도의 문명을 가진 고대국가가 정말 문자가 없었을까요? 

이 문제는 오늘날 역사학자들이 매우 흥미를 갖는 수수께끼가 되었습니다. 


전문가들의 연구에 따르면 지금으로부터 4800~2800년 전 , 즉 싼싱두이 문화가 전성기에 이르렀을 당시 고촉국 문화의 영향력은 이미 서쪽으로 원구이 고원, 북쪽으로 산시성과 간쑤 성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고촉국은 고도로 발달한 문명의 중심을 창조했고 그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보아 중원문화 내지 서아시아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당시의 문화, 경제와 무역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음을 의미하는 것이죠. 

그러나 이와 동시에 싼싱두이 문명은 그 어떤 문명의 반복이나 복사판도 아니며 타 문명과 사뭇 다른 특유의 독특한 매력과 특색으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절로 빠져들게 합니다. 

싼싱두이의 출토 문물은 창장강 유역도 황허강 유역과 마찬가지로 중화문명의 발원지라는 것을 증명하는 유력한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2. 싼싱두이 문화 유적의 주인은 누구인가? 


현재 발견된 대량의 유적과 유물로 봐서 싼싱두이 유적이 번영했던 시기에는 이미 고도로 발달한 고대문명 중심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그렇다면 누가 이곳에 이토록 훌륭한 성과를 이루어 냈을까요?

전체적으로 봤을 떄 이곳의 유물은 고대 파촉, 특히 촉나라 사람들의 역사적인 발전과정 또는 파촉 문명의 홍성과 쇠퇴의 전 과정을 반영하고 있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이 과정은 다섯 개 단계로 나눌수 있습니다. 

그중에서 지금으로부터 4000~3000년 사이 싼싱두이 문화가 번영한 시기는 첫 번쨰 정점으로 파촉 문명이 정식으로 형성되던 단계였습니다. 

이 시기 '싼싱두이 문화' 의 주인은 현재 '어부씨 촉왕'과 '두우씨 촉왕' 이라는 두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전자는 더 나아가서 어부씨가 싼싱두이 문명의 창시자라고 믿고 있습니다. 

어느쪽의 견해가 더 정확한지는 더 많은 조사와 심도 깊은 연구를 통해 입증해야 할것입니다..

(아직도 조사중.. ㅋㅋㅋ 몇년째 조사중 ㅋㅋㅋ) 

3. 싼싱두이 문화는 왜 갑자기 사라졌는가? 

방대한 규모의 싼싱두이 고대도시와 고대유적군은 상왕조와 주왕조가 교체되는 시기에 갑자기 버려져서 오늘날까지 여전히 옛날의 지형과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소중한 유산을 남겨 주는 동시에 끝없는 궁금증과 의문을 남긴채로 말입니다. 

싼싱두이 문화가 갑작스럼게 사라진 데 대해 현재 주로 수재로 인해 사라졌다는 설과 다른곳으로 이전했다는 설, 그리고 멸망설과 왕조 교체설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들은 아직 많은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어 싼싱두이 유적지가 갑작스럽게 버려진 이유와 싼싱두이 문화가 빠르게 사라진 이유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로 남아 있습니다, 


4. 싼싱두이 사람은 외계인인가? 

높은 콧대와 움푹 들어간 두 눈, 툭 튀어나온 광대뼈와 쩍 벌어진 입, 커다란 귀에는 구멍을 뚫었고 표정은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것이 요상합니다. 

기괴하고 특한 형상의 청동기 기물을 본 사람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촉나라 사람이 아닌것같다고 말합니다. 

일부 해외 언론들은 심지어 상고시대의 외계인일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이러한 의문에 대해 쓰촨 성의 고고학 연구소 소장은 옛날 사람들의 지리적 활동 능력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고 밝혔습니다. 

새로운 인류학과 고고학 발견에 따르면 약 1만 년 전 베링 해협이 아직 빙성에 뒤덮인 너비 900마일의 육상 통로였을 당시 아시아 대륙에서 생활하던 용감한 옛 사람들은 이미 아메리카 대률을 밟았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언어학자들은 심지어 아메리카 북부의 에스키모 인과 아시아의 시베리아 원주민들의 언어에 비슷한 점이 아주 많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중앙아메리카와 북아메리카의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북서부의 인디언들이 일찍이 고대 중국과 접촉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캘리포니아의 바다에서 고대 중국의 어민들이 사용했던 돌로 만든 닻이 발견되었고 인디언 유적지에서는 중국 고대의 황금 기물과 도자기 조각들이 발견되었습니다. 

멕시코에서 출토된 돌그릇도 중국 상나라 시기의 그릇과 외형 및 문양이 놀라울 정도로 비슷했습니다. 

그 외에도 제사를 지내는 굴인 제사갱에서 출토된 70점의 상아등 물품으로 보아 싼싱두이 고축국은 당시 주변국가 내지는 더 먼 곳과 상품교역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일부 청동기 기물에 고대 페르시아 풍의 문양이 새겨져 있고 일부 도기 술잔이 유럽에서 출토된 같은 시기의 술잔의 외형과 매우 비슷합니다. 

따라서 싼싱두이의 청동기 기물은 아마도 서아시아,극동,유렵 등 타역문화의 영향을 받아서 각 문화적 요소들이 뒤섞인 것으로 추측됩니다. 

싼싱두이에서 출토된 황금 지팡이, 황금가면 청동두상은 대조해 본 사람들이 여러 가지 추측을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싼싱두이 문명이 비록 중원 문명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특유의 느낌을 갖고 있다고 해도 여러 가지 추측이 과연 옳은지 그른지를 입증할 만한 근거는 여전히 불충분한 상황입니다.